1. 아누라다푸라 https://blog.naver.com/pic2630/223894930522
2. 프론나루와 https://blog.naver.com/pic2630/223896174342
3. 시기리야 https://blog.naver.com/pic2630/223902697853
4. 캔디 ~ 누와라엘리야 https://blog.naver.com/pic2630/223927898033



인도양의 작은 보석, 스리랑카에서 보낸 일주일은 마치 시간여행과 같았다. 2,500년 전 고대 왕국의 숨결이 살아있는 아누라다푸라에서 시작해, 콜롬보의 현대적인 거리까지, 이 섬나라는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었다.
시기리야 바위 위에서 바라본 새벽 풍경, 누와라엘리야로 가는 열차안에서 마주한 초록빛 차밭, 그리고 피나왈라에서 만난 코끼리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까지. 매 순간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스리랑카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와 진심 어린 환대는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해주었고, 그들의 순수함 앞에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관광이 아닌, 영혼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지금부터 그 소중했던 7일간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마음속 깊이 새겨진 스리랑카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1~2콜롬보 ~ 네곰보
3.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4. 프론나루와Polonnaruwa
5. 시기리야 Sigiriya
6. 캔디Kandy
7. 누와라엘리야Nuwara eliya
8. 피나왈라Pinnawala
9. 콜롬보

영남알프스학교 해외문화탐방단 (스리랑카)
출발 :
2025. 6월 2일 11시 45분 인천공항(스리랑카항공- 약 8시간 소요)
스리랑카와 한국은 약 3시간 30분 가량 시차가 있다(스리랑카가 늦다)
콜롬보 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 뜨거운 열대의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긴 비행의 피로도 잊은 채, 설렘만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네곰보Negombo
네곰보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는 낯선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야자수들이 늘어선 길, 알록달록한 간판들, 그리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스파이스 향기까지.
네곰보에 도착하자 바다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이 작은 어촌 마을은 여행의 시작점치고는 완벽했다. 첫날 밤, 스리랑카는 나에게 조용한 포옹으로 인사를 건넸다. 아직 이 땅이 내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모르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진짜 모험이 시작될 것이다.


고대 왕국의 심장부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고대 싱할라 문명의 유적지, 세계문화유산)
이른 아침 네곰보를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차창 밖 풍경이 서서히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3시간여의 여정 끝에 도착한 아누라다푸라는 마치 거대한 야외 박물관 같았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 ‘스리마하 보디(Jaya Sri Maha Bodhi Tree)’ 앞에 서 나는 압도적인 경외감에 휩싸였다. 나무 아래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마치 시공을 초월한 신성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고요한 평화가 공간 전체를 감쌌다.
나는 잠시 억겁의 시간과 무한한 공간 우주를 상상하는 명상을 하였다. 새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더니 마침내 사람들의 소리도 새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고, 과거가 현재를 품으며, 이 나무 한 그루가 수천 년의 시간과 수만 명의 영혼을 이어주고 있다는 것을.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 '스리마하 보디(Jaya Sri Maha Bodhi Tree)


기원전 236년, 아소카 황제의 딸 상가미타 스님(Sangamitta Maha Theri)이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인도 '보드가야' 보리수의 남쪽 가지를 잘라 스리랑카로 가져왔다. 데바남피야티사Devanampiya Tissa 왕의 요청으로 시작된 이 일은 단순한 나무 한 그루를 심은것이 아니라 불교 문명 자체의 전파였다.
심은 날짜가 기록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다. 2300여 년의 세월 동안 왕조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수많은 침입과 파괴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현재 이 보리수는 6.5미터 높이의 계단식 대지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파리바라 보디'라 불리는 보호수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연중 끊이지 않는 순례자들의 발걸음과 기도 소리가 이곳의 일상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나무가 있는 최상층 계단으로의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노령화된 나무의 보호와 1983년 7월 부터 2009년 5월까지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146명의 순례자가 희생된 아픈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이 한 그루의 나무가 품고 있는 역사와 신앙의 깊이를 생각하면, 스리랑카 불교문화의 정수를 만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인도 보드가야의 보리수 가지를 가져와 스리랑카에 심었지만, 현재 두 나무의 나이를 비교해보면 놀라운 역설이 드러난다. 스리랑카 스리마하 보리수는 2,300년의 세월을 자랑하는 반면, 원조 격인 인도 보드가야 보리수는 고작 150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유는 인도 역대 여러 왕들이 부처님과 불교를 시기하여 나무에 독을 뿌리거나 베어내는 등의 파괴 행위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나무를 다시 심어야 했다. 결정적으로 1870년대 자연재해로 마지막 남은 나무마저 완전히 파괴되자, 이번에는 오히려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가지로 현재의 나무를 다시 심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그 보리수의 혈통을 이어받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나무는 바로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의 '스리마하 보리수(Jaya Sri Maha Bodhi Tree)'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나무의 나이를 넘어서, 불교 역사 보존에 대한 스리랑카인들의 헌신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참고 : 스리랑카 모든 사찰, 스투파에는 모자와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루완웰리세야 가는 길 , 햇빛은 따갑지만 큰 나무 그늘 곳곳이 극락을 맛보여준다.
루완웰리세야스투파 The Ruwanwelisaya Stupa
2천 년을 견뎌낸 스리랑카 불교의 상징
루완웰리세야 스투파의 거대한 하얀 돔이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2,000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경이로움이 밀려왔다.




기원전 140년경 싱할라족 두투게무누(Dutugemunu) 왕이 건설한 스투파. 당시 스리랑카는 두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북부의 고도 아누라다푸라는 인도 콜라 왕국 출신의 엘라라(Elāra) 왕이 44년간 통치하고 있었고, 남부 루후나 지역은 토착 싱할라족이 다스리고 있었다. 두투게무누(Dutugemunu)왕은 인도 콜라 왕 엘라라(Elāra)를 물리치고 스리랑카의 통치자가 된 후 역사적 승리와 통일의 기념비로 이 스투파를 세웠다.
세계 최대 규모의 부처님 사리
Ruwanwelisaya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부처님 사리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양이 많다는 의미를 넘어서, 불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성물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예언과 사리의 운명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그의 사리는 8개국에 동일하게 분배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부처님은 생전에 이미 예언을 남기셨다:
"인도 라마가마 마을에 있는 나의 사리는 나가 신도들이 보관하다가, 훗날 스리랑카의 위대한 왕에 의해 특별한 곳에 안치될 것이다"
이 예언대로 두투게무누 왕 시대에 라마가마의 사리가 스리랑카로 옮겨와 Ruwanwelisaya에 봉안된 것이라고한다.
https://youtube.com/shorts/JdLmtlF7RC0

Ruwanwelisaya에서 행해지는 불교 의례 행위
신도들과 순례자들이 함께 모여 스투파 주변을 시계 방향으로 돌며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집단 의례
우리 일행도 함께 행진을 하였다. 맨발로 뜨거운 벽돌 바닥을 걷는 것은 다소 힘들었으나 그늘에 발을 식히기 위해 준비된 젖은 발걸레에 잠시 올라가 또 극락을 맛보았다. 스리랑카는 태양 아래는 뜨거우나 그늘은 신기할 정도로 시원하며 바람도 좋다. 곳곳에 어마어마한 나무들이 있어 그늘도 깊었다.
사마디 불상 Samadhi Buddha




루완웰리세야를 나와 약 10분 쯤 걸었다. 아누라다푸라의 마하메와나 공원((Mahamevnāwa Gardens)에 위치한 사마디 불상(Samadhi Buddha)을 만났다. 이 불상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뛰어난 부처님 상 중 하나이다.
불상의 특징은 세 가지 각도에서 관찰할 때 얼굴 표정이 변한다는 것이다. 왼쪽에서 보면 살짝 미소짓는 모습, 오른쪽에서 보면 심각한 표정 앞에서 보면 보통 표정으로 변한다. 실제 불상을 몇바퀴 돌면서 관찰했는데 정말 신기했다.
자연 친화적인 스리랑카 호텔들



우리는 시기리야로 이동하여 카사파 라이온 락Kassapa Lion Rock이란 호텔에서 이틀을 묵었다. 고요한 자연의 소리, 빛나는 별과 반딧불이, 공작새와 도마뱀을 만날 수 있었다.
스리랑카의 상당수 호텔, 식당, 마시지샵들은 상당히 자연친화적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로이와 승범이>
승범이는 울산 나마스까르 인도음식점 대표이며 영남알프스학교와 해외문화 탐방을 함께 진행중이다. 여행 박사 까지는 아니고 학사 정도는 되겠다 ㅎㅎ

참고 - 우리를 스리랑카 심장속으로 안내해준 안내자를 소개한다.
nishantha roy (우리는 그를 '로이'라 부른다)
로이는 2,000년 초 한국에 산업연수원 근로자로 들어와 약 10년 간 한국에서 근무하였다.
현재는 스리랑카로 돌아가 여행사를 운영중이다. 우리의 일정을 로이가 다 준비해 주었다.
그의 말로는 한국에 있을땐 한국사람 못지 않게 한국어를 구사했으나 스리랑카에서 다시 10년을 보내며 한국말이 많이 서툴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충분한 의사소통, 약간의 해설도 가능하다. 로이는 친절한 태도 부지런 성실함으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혹시 스리랑카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로이를 소개시켜 드리고 싶다.

아 그리고~
한국인과 여행은 처음이라던 나의 귀여운 동생이 된 라히루 lahiru와 즐거운 에피소드.
기차 여행중 만난 미소년과 우리를 미치게 웃게 했던 흥부자 쿠말의 이야기도 전하겠다.
친근한 웃음과 소탈한 매력을 지닌 스리랑카 사람들이야말로 이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다음은 스리랑카 여행의 백미 시기리야 이야기가 이어지겠다.
1. 아누라다푸라 https://blog.naver.com/pic2630/223894930522
2. 프론나루와 https://blog.naver.com/pic2630/223896174342
3. 시기리야 https://blog.naver.com/pic2630/223902697853
4. 캔디 ~ 누와라엘리야 https://blog.naver.com/pic2630/223927898033
인도양의 작은 보석, 스리랑카에서 보낸 일주일은 마치 시간여행과 같았다. 2,500년 전 고대 왕국의 숨결이 살아있는 아누라다푸라에서 시작해, 콜롬보의 현대적인 거리까지, 이 섬나라는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었다.
시기리야 바위 위에서 바라본 새벽 풍경, 누와라엘리야로 가는 열차안에서 마주한 초록빛 차밭, 그리고 피나왈라에서 만난 코끼리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까지. 매 순간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스리랑카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와 진심 어린 환대는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해주었고, 그들의 순수함 앞에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관광이 아닌, 영혼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지금부터 그 소중했던 7일간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마음속 깊이 새겨진 스리랑카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1~2콜롬보 ~ 네곰보
3.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4. 프론나루와Polonnaruwa
5. 시기리야 Sigiriya
6. 캔디Kandy
7. 누와라엘리야Nuwara eliya
8. 피나왈라Pinnawala
9. 콜롬보
영남알프스학교 해외문화탐방단 (스리랑카)
출발 :
2025. 6월 2일 11시 45분 인천공항(스리랑카항공- 약 8시간 소요)
스리랑카와 한국은 약 3시간 30분 가량 시차가 있다(스리랑카가 늦다)
콜롬보 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 뜨거운 열대의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긴 비행의 피로도 잊은 채, 설렘만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네곰보Negombo
네곰보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는 낯선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야자수들이 늘어선 길, 알록달록한 간판들, 그리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스파이스 향기까지.
네곰보에 도착하자 바다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이 작은 어촌 마을은 여행의 시작점치고는 완벽했다. 첫날 밤, 스리랑카는 나에게 조용한 포옹으로 인사를 건넸다. 아직 이 땅이 내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모르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진짜 모험이 시작될 것이다.
고대 왕국의 심장부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고대 싱할라 문명의 유적지, 세계문화유산)
이른 아침 네곰보를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차창 밖 풍경이 서서히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3시간여의 여정 끝에 도착한 아누라다푸라는 마치 거대한 야외 박물관 같았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 ‘스리마하 보디(Jaya Sri Maha Bodhi Tree)’ 앞에 서 나는 압도적인 경외감에 휩싸였다. 나무 아래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마치 시공을 초월한 신성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고요한 평화가 공간 전체를 감쌌다.
나는 잠시 억겁의 시간과 무한한 공간 우주를 상상하는 명상을 하였다. 새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더니 마침내 사람들의 소리도 새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고, 과거가 현재를 품으며, 이 나무 한 그루가 수천 년의 시간과 수만 명의 영혼을 이어주고 있다는 것을.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 '스리마하 보디(Jaya Sri Maha Bodhi Tree)
기원전 236년, 아소카 황제의 딸 상가미타 스님(Sangamitta Maha Theri)이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인도 '보드가야' 보리수의 남쪽 가지를 잘라 스리랑카로 가져왔다. 데바남피야티사Devanampiya Tissa 왕의 요청으로 시작된 이 일은 단순한 나무 한 그루를 심은것이 아니라 불교 문명 자체의 전파였다.
심은 날짜가 기록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다. 2300여 년의 세월 동안 왕조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수많은 침입과 파괴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현재 이 보리수는 6.5미터 높이의 계단식 대지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파리바라 보디'라 불리는 보호수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연중 끊이지 않는 순례자들의 발걸음과 기도 소리가 이곳의 일상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나무가 있는 최상층 계단으로의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노령화된 나무의 보호와 1983년 7월 부터 2009년 5월까지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146명의 순례자가 희생된 아픈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이 한 그루의 나무가 품고 있는 역사와 신앙의 깊이를 생각하면, 스리랑카 불교문화의 정수를 만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인도 보드가야의 보리수 가지를 가져와 스리랑카에 심었지만, 현재 두 나무의 나이를 비교해보면 놀라운 역설이 드러난다. 스리랑카 스리마하 보리수는 2,300년의 세월을 자랑하는 반면, 원조 격인 인도 보드가야 보리수는 고작 150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유는 인도 역대 여러 왕들이 부처님과 불교를 시기하여 나무에 독을 뿌리거나 베어내는 등의 파괴 행위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나무를 다시 심어야 했다. 결정적으로 1870년대 자연재해로 마지막 남은 나무마저 완전히 파괴되자, 이번에는 오히려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가지로 현재의 나무를 다시 심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그 보리수의 혈통을 이어받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나무는 바로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의 '스리마하 보리수(Jaya Sri Maha Bodhi Tree)'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나무의 나이를 넘어서, 불교 역사 보존에 대한 스리랑카인들의 헌신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참고 : 스리랑카 모든 사찰, 스투파에는 모자와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루완웰리세야 가는 길 , 햇빛은 따갑지만 큰 나무 그늘 곳곳이 극락을 맛보여준다.
루완웰리세야스투파 The Ruwanwelisaya Stupa
2천 년을 견뎌낸 스리랑카 불교의 상징
루완웰리세야 스투파의 거대한 하얀 돔이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2,000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경이로움이 밀려왔다.
기원전 140년경 싱할라족 두투게무누(Dutugemunu) 왕이 건설한 스투파. 당시 스리랑카는 두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북부의 고도 아누라다푸라는 인도 콜라 왕국 출신의 엘라라(Elāra) 왕이 44년간 통치하고 있었고, 남부 루후나 지역은 토착 싱할라족이 다스리고 있었다. 두투게무누(Dutugemunu)왕은 인도 콜라 왕 엘라라(Elāra)를 물리치고 스리랑카의 통치자가 된 후 역사적 승리와 통일의 기념비로 이 스투파를 세웠다.
세계 최대 규모의 부처님 사리
Ruwanwelisaya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부처님 사리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양이 많다는 의미를 넘어서, 불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성물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예언과 사리의 운명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그의 사리는 8개국에 동일하게 분배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부처님은 생전에 이미 예언을 남기셨다:
"인도 라마가마 마을에 있는 나의 사리는 나가 신도들이 보관하다가, 훗날 스리랑카의 위대한 왕에 의해 특별한 곳에 안치될 것이다"
이 예언대로 두투게무누 왕 시대에 라마가마의 사리가 스리랑카로 옮겨와 Ruwanwelisaya에 봉안된 것이라고한다.
https://youtube.com/shorts/JdLmtlF7RC0
Ruwanwelisaya에서 행해지는 불교 의례 행위
신도들과 순례자들이 함께 모여 스투파 주변을 시계 방향으로 돌며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집단 의례
우리 일행도 함께 행진을 하였다. 맨발로 뜨거운 벽돌 바닥을 걷는 것은 다소 힘들었으나 그늘에 발을 식히기 위해 준비된 젖은 발걸레에 잠시 올라가 또 극락을 맛보았다. 스리랑카는 태양 아래는 뜨거우나 그늘은 신기할 정도로 시원하며 바람도 좋다. 곳곳에 어마어마한 나무들이 있어 그늘도 깊었다.
사마디 불상 Samadhi Buddha
루완웰리세야를 나와 약 10분 쯤 걸었다. 아누라다푸라의 마하메와나 공원((Mahamevnāwa Gardens)에 위치한 사마디 불상(Samadhi Buddha)을 만났다. 이 불상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뛰어난 부처님 상 중 하나이다.
불상의 특징은 세 가지 각도에서 관찰할 때 얼굴 표정이 변한다는 것이다. 왼쪽에서 보면 살짝 미소짓는 모습, 오른쪽에서 보면 심각한 표정 앞에서 보면 보통 표정으로 변한다. 실제 불상을 몇바퀴 돌면서 관찰했는데 정말 신기했다.
자연 친화적인 스리랑카 호텔들
우리는 시기리야로 이동하여 카사파 라이온 락Kassapa Lion Rock이란 호텔에서 이틀을 묵었다. 고요한 자연의 소리, 빛나는 별과 반딧불이, 공작새와 도마뱀을 만날 수 있었다.
스리랑카의 상당수 호텔, 식당, 마시지샵들은 상당히 자연친화적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로이와 승범이>
승범이는 울산 나마스까르 인도음식점 대표이며 영남알프스학교와 해외문화 탐방을 함께 진행중이다. 여행 박사 까지는 아니고 학사 정도는 되겠다 ㅎㅎ
참고 - 우리를 스리랑카 심장속으로 안내해준 안내자를 소개한다.
nishantha roy (우리는 그를 '로이'라 부른다)
로이는 2,000년 초 한국에 산업연수원 근로자로 들어와 약 10년 간 한국에서 근무하였다.
현재는 스리랑카로 돌아가 여행사를 운영중이다. 우리의 일정을 로이가 다 준비해 주었다.
그의 말로는 한국에 있을땐 한국사람 못지 않게 한국어를 구사했으나 스리랑카에서 다시 10년을 보내며 한국말이 많이 서툴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충분한 의사소통, 약간의 해설도 가능하다. 로이는 친절한 태도 부지런 성실함으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혹시 스리랑카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로이를 소개시켜 드리고 싶다.
아 그리고~
한국인과 여행은 처음이라던 나의 귀여운 동생이 된 라히루 lahiru와 즐거운 에피소드.
기차 여행중 만난 미소년과 우리를 미치게 웃게 했던 흥부자 쿠말의 이야기도 전하겠다.
친근한 웃음과 소탈한 매력을 지닌 스리랑카 사람들이야말로 이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다음은 스리랑카 여행의 백미 시기리야 이야기가 이어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