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억새길3구간 사자평억새길-검은 노다지 사자평마을 (보릿고개 넘어일군 검은 노다지)

관리자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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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억새길 3구간 사자평억새길-걷기만 해도 바람신이 되는 길

 

검은 노다지 사자평마을


보릿고개 넘어일군 검은 노다지


이들이 처음 화전민들이 들어왔을 때는 잡초와 억새뿐이라 겨우 입에 풀질을 할 정도였다.

초기 이주자들은 먹을 게 없어 ‘깽동 보리밥’, ‘갱죽’(산나물 죽), ‘딩겨밥’, ‘송진밥’,

 ‘칡떡’으로 목숨을 연명하며 정착하기 시작했다. 


꿀꿀이 죽 보다 못한 칡떡을 먹으며 보릿고개를 넘겼다. 

1960년 초 정부의 식량자급정책으로 개간을 시작한 화전민들은 잡목을 베어낸 땅에 감자, 무, 

약초, 나물, 당근 재배를 했지만 기후가 일정하지 못하고 일기가 불순하여 작황이 좋지 않았다.

비료가 귀한 시절이라 매년 억새밭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장단지 만한 당근이 수확되었다. 


밀양 얼음골에 사는 촌로는 “사자평마을 감자가 맛있다고 해서 씨종자를 구하려고 몇 번 올라가 본 적이 있다. 

1960년 대 억새 베러 다닐 때만해도 일제 때 목장 밖이고 마을이 없었는데, 

그때 는 눈이 퀭한 사람들이 흙집에 살더라.”고 기억했다. 1970년대 화전을 금지시키던 무렵이었다. 



<1960년 대 사자평 마을>


사자평 이곳저곳 뿔뿔이 흩어져 있던 독가촌을 고사리분교가 있는 일명 ‘북방우히기’에 모여 살게 했다.

여섯 동의 집을 지어 한 채에 두 세대씩 살았다. 

이들은 고랭지 채소를 심고 염소를 키웠다. 

한창 많을 때는 80호 가까이 살다가 새마을운동 녹화사업이 시작되고부터는 20가구로 줄어들었다.


개간정책이 실패하여 개간에 참여 했던 일꾼과 화전민만 남아 고달픈 생활하게 되자 하나둘 이곳을 떠났다.

사자평에서 도자기를 굽던 도공의 까마득한 후예라고 밝힌 한 노인은 

“사자평은 살 곳이 못 돼.”라고 단언하고는 사자평마을에 삶에 회상도 버거워 하였다.

“해방 전에는 사자평에 사는 사람들 다 해봤자 대엿 집이 고작이었는데, 

한국전쟁이 끝난 후부터 얄궂은 사람들이 들어와 도자기 마을을 아주 버려 놓았다. 


어중이떠중이가 한창 많을 때는 팔십 가구가 넘었다.”며 희미한 초점을 깔았다. 

노인네는 이어서 “떠나고 싶어도 백만 평 넓은 땅, 검은 노다지를 두고 갈 수가 없었다.”며 

사자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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